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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처럼 춤추다

by myview250528 2026.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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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처럼 춤추다

한 트로트 가수의 열성팬인 시어머니를 따라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 날은 3일간 진행한 콘서트의 마지막날이었다. 출발 전부터 마지막날이 제일 재미있는 날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오늘이 지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콘서트장 주변은 열기로 가득했다.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인데도 나만 추운가 싶을 정도였다. 난로가 있는 대기장소로 들어가보니, 꽉 들어찬 인파가 들뜬 표정으로 무리지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중장년층 여성인데 그 나이대가 50대부터 90대까지다. 그 중에는 넘치는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부류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모자에 다양한 사진과 문구를 배지로 만들어 화려하게 꽂고 있었다. 대형 사진을 족자로 만들어 허리춤에 찬 모습은 걸어다니는 배너같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악세사리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자 그 사람은 점점 더 목소리가 커졌다. 누구도 나만큼은 사랑하지 못할 거라는 듯.
 
혼자 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분들은 대개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조용히 앉아 계시는데, 곧 누군가가 어김없이 말을 건다.
 
“어디서 오셨어요?”
“해남이요.”
“땅끝마을 그 해남이요?”
” 네, 거기서 왔어요.”
 
멀리서 올수록 계급이 올라가는 이 세계. 그 분은 혼자 와서 주눅들었던 마음이 모두 풀린 표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 세계에 속하지 못했다. 모르는 아기 돌잔치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콘서트장 안으로 입장했다. 3층 꼭대기 자리였다. 별로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번째 공연이라 어디든 상관없어 보이셨다. 좌석을 찾아 앉아 응원봉도 꺼내 준비를 마쳤다. 그러는 사이 한 중년 여성이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70대쯤 되었을까. 자리가 맞는지 몇 번을 확인한 후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숨을 돌리고는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방금 도착했어. 네 덕에 이런데도 와 본다. 잘 보고 갈게.”
 
전화를 끊는데, 슬쩍 보이는 휴대폰 화면에는 “딸”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치열한 티케팅을 뚫고 엄마를 위해 어렵게 한 장을 구했을 것이다. 딸도 엄마도 각자 설레고 있겠지.
 
나는 어쩌다보니, 그 분의 생애 첫 콘서트 관람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분은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채 콘서트장 안의 광경을 마주했다. 화려한 무대 장치, 무대 앞의 좋은 좌석들, 모두 같은 색을 입은 사람들에 압도된다. 그리고 곧 생각하는 듯했다.
 
‘저마다 손에 들고 있는 둥그런 저건 뭐지? ‘
 
응원봉.
아, 그 분은 두 손에 아무것도 없다.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오히려 당황했다.
아, 맨손이시네.
 
곧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응원봉에 일제히 같은 색이 송출되며 장내 전체가 함성과 함께 빛으로 물들었다. 가수가 화려한 무대 조명과 함께 등장했다. 콘서트장을 꽉 채우는 함성소리. 신나는 노래가 연이어 흐른다. 가수는 관객을 향해 앙탈, 재롱, 감사의 인사를 쏟아냈다. 한동안 어색하게 바라보던 그 분의 몸도 슬슬 풀렸다. 손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한다.
 
잔잔한 노래들이 지나고 다시 흥이 나는 곡이 시작됐다. 가수가 “모두 일어나주세요” 하자 그 분도 느릿하게 일어섰다.
응원봉이 없는 두 손을 가슴 위에 잠시 얹고 있다가, 노래가 클라이막스에 이르자, 허공을 향해 사정없이 흔들었다.
내가 본 가장 날 것의 손동작이었다.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추는 춤이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무아지경으로.
콘서트 입장 1시간 15분만의 일이었다. 제멋대로인 춤은 점차 자기만의 동작을 정했다. 파도를 타는 듯하다. 노래에 맞춰 들썩들썩. 응원봉 없는 그분이 가장 격정적이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행복하다니. 아기가 느끼는 것 같은 순수한 기쁨이었다. 그 춤사위와 에너지는 나만 본 것이었다.
그 딸이 얼마나 효도를 했는지, 엄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참 효도하셨어요. 어머니가 정말 행복해하셨어요”
콘서트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손동작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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