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
아이를 재운 후 살며시 나오는데 성공했다. 대체 이건 얼마만의 호사스런 시간인가? 리모콘을 집어들고 거실에 반쯤 누운채 자리를 잡았다. 콧노래가 나온다. 며칠전에 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레이디두아가 3화가 남아 오늘 다 볼 생각에 신이났다. 오랜만에 푹 빠져들어 보는 드라마라 얼른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6화 재생 시작.
밀려드는 공복감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고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까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대충 먹어서 그런 것이다.
“아, 출출한데?”
이윽고 시작되는 나 자신과의 타협의 시간.
‘요즘 열심히 달리니 별로 살이 안 찌던데?’ ‘아까 안 먹었으니까 이게 저녁이지 뭐.’ ‘내일 뛸 꺼니깐 괜찮아.’
주방으로 가서 괜히 찬장을 열어 보았다. 오늘따라 남편이 사다 놓은 여러 종류의 컵라면이 유독 잘 보였다. 나 자신과의 타협이 이미 끝난 터라, 별 고민없이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그 잘 보이는 컵라면을 꺼내 비닐을 뜯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김치를 빼 놓을 순 없다. 김치를 또 꺼냈다.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냄새가 정말 좋았다. 후루룩 면발을 입 안에 넣으니 감칠맛이 입 안을 감쌌다.
후회 그리고 사죄의 달리기
짧은 쾌락 후에 후회는 길다. 다 먹은 그 시간부터 밀려왔다. 배가 부르니 금세 졸음이 와서 드라마는 얼마 더 보지도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의 소중한 시간인데…하는 생각과 함께 점점 의식을 잃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일어나는 순간, 드라마 한 편을 채 못보고 배불러서 잠든 나 스스로 미련하다는 생각을 했다. 늘 이런 후회를 하면서 왜 그러는 거냐 나 자신아? 끄르르륵, 하고 뱃속에서 소화되는 소리가 났다. 배가 아직도 부른 것 같았다.
얼른 일어나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후회 가득한 마음으로, 내 몸에 사죄하는 달리기였다. 트림이 걱걱 나고, 속도 쓰렸다. 예전에 식도염과 위염에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떠올랐다. 왜 인간은 후회를 반복하는가? 아마도 쾌락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어제 라면이 참 맛있었다는 것까지는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이제 야식은 멀리하자. 내 몸에 너무나 미안한 일이지 않은가?
8km를 달리는 동안 하나도 개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치고나니 기분전환은 되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대로 과일, 커피, 빵으로 식사를 하고 출근하면서 이 악순환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저녁을 가볍게 먹고 레이디두아를 마저 볼 생각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또 모를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