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 시간에 늦을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늦었는데, 이번에 또 늦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느긋함일 수도 있고, 느림일 수도 있고, 게으름일 수도 있고, 어쩌면 타인에 대한 무시일 수도 있다.
나는 늦는 것에 강박이 있다.
약속에 늦은 상대에게 내 시간을 뺏겼다고 느낀다.
그 시간은 내가 더 누워서 빈둥거릴 수 있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화를 꽉 눌러 담다가,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한다.
주로 지각 때문이다.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은 ‘미안하다’ 는 말없이 변명으로 대충 넘길 때다.
늦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변명이 아니라 사과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재발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이미 신뢰가 이미 깨진 상황이니 말이다.
'내가 이 사람을 다음에 또 봐도 될까'라는 의구심을 잠재울 만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런 나에게 제일 난감한 것은, 내가 늦을 때다.
끔찍한 기억이 하나 있다.
일요일 낮 약속에서 평소처럼 넉넉하게 미리 출발하였는데, 알 수 없는 사정으로 모든 차선이 차로 꽉 막혀버렸다.
버스는 다리 위에서 한 시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기다린 상대는 평소에 자주 늦는 친구였는데,
그날은 나를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
친구는 웃는 얼굴로 그럴 수 있다고 말했고,
사색이 된 얼굴로 나타나 연신 사과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했다.
나는 한동안 괴로움과 자책에 시달렸다.
이런 성향은 매사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조바심을 내고,
불안함과 초조함을 잘 느끼는 나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세상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더라도 끝까지 완성도를 높이는 사람,
그리고 주어진 시간 안에 결과를 내는 사람.
나는 후자다.
제시간에 내는 것이 나에게는 완성이다.
정확성보다 속도가 먼저다.
솔직히 말하면, 그 밑바닥에는 이런 마음도 있다.
더 누워있고 싶다.
좀 더 자고 싶다.
조금 더 게으르고 싶다.
이 욕망이 역설적으로 시간의 강박을 만든다.
며칠 전, 미용실을 갔다.
일요일 첫타임, 오전 10시 30분.
5년도 넘게 다닌 이 미용실의 내 담당 미용사는 그 사이 부원장까지 올랐다.
그런데 내 약속시간에 출근하지 않았다.
10분 늦게 도착했다.
나는 그날 시술을 모두 끝내고, 그 사람 모르게 관계를 조용히 마무리했다.
이미 한 번 노쇼가 있었다. 내가 아니라 그 미용사가 말이다.
10시 30분 예약이었으나 11시까지 오지 않아 그냥 돌아갔던 날이다.
그 이후 또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런데 이번에도 늦었다.
그는 "10분 정도 늦었다"며 죄송하다고 '10분'을 강조했다.
사과를 했지만, 큰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였다.
이전의 노쇼는 잊은 듯했고
예약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 보였다.
이런 유형의 상식의 부재.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머리를 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특별한 말 없이, 나는 평소처럼 인사하고 나왔다.
그렇게 끝냈다.
늦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는가를 생각했다.
늦음은 사건이 아니라 태도고, 반복된 늦음은 신뢰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