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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시 라인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by myview250528 2026.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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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8일 목요일 새벽 5시, 영하9도

어제 저녁엔 안전 문자가 쏟아졌다. (왜 여러번 보내는지 모르겠다!) 강추위를 예고하며 외출 시에는 방한용품을 철저히 챙기고, 어지간하면 나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허벅지가 시렸던 지난 기억이 떠올라 평상시보다 두툼하게 옷을 챙겨 입고 나섰다.

띄엄띄엄 불이 켜진 상가가 보인다. 무인슈퍼, 편의점, 건강원. 물건을 배달하느라 바쁜 트럭도 있었다. 형광색 작업복의 환경미화 요원을 보고는, 옷이 좀 멋진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거리가 나오면 두 번 건너 대각선 방향으로 향한다. 나의 달리기 코스가 시작된다. 나이키 러닝앱으로 목표를 맞춘다. 오늘은 8km! 야심차게 시작 버튼을 누르면 9, 8, 7 …카운트를 한다. 그 동안 재빠르게 핸드폰을 러닝용 허리띠에 넣고 두툼한 장갑을 낀다.

“운동을 시작합니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따라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고가 밑으로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한강이 보인다. 강 따라 길이 끝없이 이어져 중간에 멈출 일이 없다. 공사중이라 임시로 설치한 구조물들이 중간중간 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다

오늘은 반포 방향으로 달린다. 주중 새벽엔 보통 그렇다. 어느 날인가 상암 쪽으로 갔었는데, 산의 어둠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좋은 코스이긴 한데, 해가 지면 무척이나 공포스럽다.

문득 한여름에 뛰던 때가 떠오른다. 그땐 옷차림이 참 가벼웠는데도 땀이 흠뻑 났었다. 갑작스런 폭우에 온몸을 내맡기고 물장구 치듯 뛰던 날, 뙤약볕 아래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픈 때, 화려한 일몰에 매료되어, 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계속 이렇게 달리는 것이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더울 때도, 추울 때도, 폭우가 쏟아질 때도 ‘그냥’ 달리는 것. ‘그냥’ 계속 나아가는 것.

아, 어쩌면 피니시 라인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삶의 마지막이 꼭 웅장하거나 거룩하지 않겠구나. 성공이나 실패로 표현할 수 없겠구나.

달리고 있던 화면이 예고없이 정전되듯, 뚝 끊기는 것이겠구나. 사랑한다, 감사했다, 미웠다 —소감을 말할 틈도, 거창한 마지막 식사도 없이. 그냥 어제와 오늘처럼. 갑자기 정전이 된 TV처럼 까맣게.

마음에 드는 엔딩이다. 나의 최선도 최악도 아닌 그냥 보통의 어느 때.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가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 4km. 어느덧 몸이 다 풀리고 다리도 가볍다. 페이스도 나쁘지 않다 (두꺼운 옷을 입은 것 치고는)

가던 방향을 멈추고 빙 돌아,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 방향을 바꾸니 완전히 또 다른 길이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정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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